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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2.0과 ableton live

view 2007/08/31 17:35 |

- app는 주간에는 지식노동자로 야간에는 감성노동자로 노동하고 있습니다. 그 둘은 크리에이티브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종류의 것이지만, 전자의 것은 미래를 향하는 일이고 후자의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디지탈 뮤직이 있습니다.

- 3주전, 야근의 쓰나미 끝에 몰려온 주말은 고요하여서 나는 휴식을 취하고 싶고 무언가를 얻고도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식노동자로써 그리고 감성노동자로써 필요한 독서를 했습니다. '정유진의 웹2.0 기획론'과 'computer muzik 에 실린 ableton live 특집'을. 그리고 나는 우연하게 동시에 취한 그 둘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유진의 웹2.0 기획론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표현은 '두근두근' 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택할 때,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찾고 그 새로운 서비스에서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 수 있는 것. 그것은 기획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나는 그 표현 하나(와 책의 무수히 많은 좋은 점들) 때문에 그녀가 좋아졌습니다.

- computer muzk의 ableton live 특집에서 가장 많이 쓰인 표현은 'revolution'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music equipment계에서는 널리 쓰이는 표현이지만 여기서의 'revolution'은 그 단어의 상징 그대로를 의미합니다. 이건 정말 기존의 것과는 다른거든요.

- 정유진은 자신의 저서에서 웹 2.0은 데이타 2.0이며 어플리케이션 2.0이라 얘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ableton live는 진정한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2.0이라 얘기할만 합니다. 음악이란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디제잉이란 그 덩어리를 뭉개고 틈을 만들어 그 둘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건 고무찰흙놀이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ableton live는 그 덩어리를 loop이라는 단위로 해석합니다. loop은 최소단위는 아니지만 적절한 단위이기는 합니다. 이는 요새 들어 특히 유효한데 요새 유행하는 대부분의 음악이 원코드에 loop을 기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ableton live의 데이타 2.0이 loop이라면 ableton live의 어플리케이션 2.0은 warp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bpm으로 각 곡들의 loop을 그 loop이 놓여져야 하는 지점에 얹을 수 있습니다. 그건 레고블럭 쌓기로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웹 2.0을 설명할 때 흔히 쓰이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ableton live에서는 디제잉보다 흔히 mash-up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 역시 요새 웹쪽에서 쓰이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 나는 웹 2.0을 지지합니다. 내가 만들어 낸 데이타를 통해 다른 이들이 정보를 얻고 나 역시 그와 같은 방법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굳이 누가 먼저 지갑을 여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합리적인 수단인 'give & take'가 성립되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도 자신의 지갑을 열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이 지갑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분명 존재할테지만요.

- 이 글을 쓰던 중 일본의 일부러 불편하게 지어진 집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이 집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불편한 생활이 인간의 감각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내가 웹 2.0을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웹 2.0을 통해 내가 원하는 걸 좀 더 편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발견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인간은 의외로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평생의 숙제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숙제를 잘 풀어나갈 수록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선생님에게서 더 많은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daw 2.0을 지지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그건 웹 2.0이 지식의 영역이라면 음악은 감성의 영역이니까, 라고 단순하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아직도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 같습니다. (추측형으로 얘기하는건 나는 한번도 스포츠에 열광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는 (돈은 많이 들지만) LP를 구입하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LP로 디제잉을 하고 (무겁고 불편하지만) 그같은 방법으로 공연을 하는게 재미있습니다. 그건 내가 웹 2.0에서 기대하는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다. 물론 ()안에 들어간 것과 같은 이유로 그것을 포기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막연하게 인생이라는 선생님에게 벌을 받을 것 같습니다.

- 나는 아직 이 글을 제대로 정리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 글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가장 자신답게 살아야 하며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리고 웹 2.0이던 웹 3.0이던 ableton live던 ableton lipsynk던 그것이 그에 부합한다면 언제라도 지지할 것입니다.


* 2007년 3월 27일 미투데이 첫번째 공식 번개 하루 전에 적은 글입니다. 미투데이 번개라면 당연히 여러 IT 업계 종사자분들이 오실텐데 적어도 올블로그에 웹 2.0 관련 포스트는 하나 발행해야 하지 않나, 싶어 적은 글이었습니다.만, 결국 그 번개에서 IT 업계 종사자분들과는 별로 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매일 술마시고 영화보는 친구들만 잔뜩 만들었지요. orz. 그나저나 미투데이 번개 전날 '여기서도 자신의 지갑을 열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이 지갑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분명 존재할테지만요.'라는 문장을 쓴 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의미심장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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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솔라리스 2008/06/06 00:17 Address Modify/Delete Reply

    d '_' 이 글 멋지네요!

    • BlogIcon app_ 2008/06/07 21:21 Address Modify/Delete

      감사합니다. 꽤 오래전에 쓴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지금도 그때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아 스스로 안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안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주의:본문 내용에 스포일러가 좀 노골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토리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니 알고 영화를 본다 해도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 같지만, 이런데 민감하신 분은 영화를 본 후 읽으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내 곁에 있어줘' 는 테레사 챈의 영화입니다. 테레사 챈은 실존인물로 14살에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었습니다. 왠지 이렇게 얘기하면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다시 풀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만나서 일반적으로 하는 소통의 수단이 모두 사라진겁니다. 말은 할 수 있습니다. 째지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그녀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 뒤에 배운 영어로 불편하지만 또렷하게 얘기합니다. 그녀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여기서는 상황속에서가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역경을 이겨내고라던지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은 그녀의 삶에 비추어 어울리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고, 수영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출연합니다. 이 영화에 자신의 역할로 직접 말이예요.


저 는 이제 이 영화에 대한 모든 설명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너무 불친절하고, 저는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었으니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테레사 챈의 영화입니다. 테레사 챈의 세계에는 소리도 빛도 없습니다. 즉, 이 영화는 침묵과 어둠의 영화입니다. 침묵과 어둠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먼발치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려 합니다. 재키는 채팅으로 만나 사랑을 나누다 변심한 레즈비언 애인- 샘에게 핸드폰 문자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 하고 뚱보 경비원- 패티 코는 자신이 경비원으로 일하는 건물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사전을 뒤져가며 편지로 씁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재키는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서 떨어지고 패티 코는 편지를 전하러 가다가 옥상에서 떨어진 재키에 의해 죽음을 맞이 합니다. 그리고 패티 코에 의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재키를 돌보기 위해 매주마다 봉사활동을 가던 테레사 챈의 집에 찾아갈 수 없었던 재키의 아버지- 손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대신 찾아가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손의 아버지와 테레사 챈은 구원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모두가 소통하고자 원하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 진심으로 소통하는 사람은 테레사 챈과 영화가 끝나는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던 손의 아버지입니다. (손의 아버지와의 만남에 그녀가 쓴 글과 손의 아버지가 만든 음식이 동기가 되었고 그 역시 말을 건내려는 거라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마음을 전하려는 행위보다는 그녀와 그의 삶 그 자체에 더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테레사 챈의 영화입니다. 보지도,듣지도 못하는, 하지만 또렷하게 얘기하는 그런 영화입니다.

몇 번이나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가, 고치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다 결국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그건 이 영화가 침묵과 어둠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재키의 핸드폰 문자와 패티 코의 편지처럼 글로는 전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테레사 챈처럼 또렷하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정 작 제가 이 영화에서 인상깊게 본 장면은 손의 아버지와 테레사 챈이 만나는 장면이 아니라, 나머지 인물들이 상대를 바라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영화내내 반복되는데, 재키가 샘이 새로운 남자친구와 함께 즐겁게 걸어가는 모습을 블럭너머에서 바라보는 장면. 패티 코가 어두운 거리에서 높은 건물의 밝은 조명 아래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장면. 유령으로 손의 아버지 곁에 있던 손의 어머니가 손의 아버지를 떠나가며 함께 정리하곤 했던 가게 밖에서 손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면. 그렇게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보던 모습이 인상적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테레사 챈처럼 또렷하게 얘기하지 못하겠습니다. '내곁에 있어줘'라고, '사랑하는 사람이여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라구요.


내곁에 있어줘 예고편 -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하루종일 예고편만 봤네요. 안녕.


* 2006년 6월 5일 사랑과 웃음의 밤에 쓴 글 입니다. 그 사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에릭쿠의 방한과 함께 특별전이 열렸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야근은 영혼을 잠식합니다. 기회가 될 때 다른 영화도 찾아 본 뒤 포스팅...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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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집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상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에요. 그 질문의 두께는 시간이 지날수록 브리태니카 백과사전만큼이나 두꺼워지지만,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처럼 명쾌한 답변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랑과 기술이라는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로맨스 보수주의자가 들으면 펄쩍 뛸 단어의 조합이지요. 하지만 모든 일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제가 근 10년 넘게 사랑에 빠져있는 상대는 바로 음악입니다. 저는 그간 제가 사랑하는 음악을 알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때로는 밥을 굶기도 했고, 공과금을 못내기도 했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어쩔때는 실연을 당하기도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덕분에 연애하게 된 적은 많군요. 좋은 음악을 많이 알고 있는 남자는 여자들의 가장 좋은 친구니까요. 흠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쉽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간장만 태우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애간장의 시간을 통해 저는 어떻게 하면 음악을 조금이나마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 사랑의 기술이 생긴거지요. 돌아서 갈 길을 바로 갈 수 있는 그런 기술이요.

제게 생긴 가장 큰 기술은 음악을 들을때마다 그 음악의 장점을 캐취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겁니다. 메타 태그를 만들어 두는 것이지요.이를테면 mansfield를 들을때면 리듬다이에 주목하고, handsomeboy technique을 들을때면 샘플링의 텍스쳐가 어떻게 겹겹이 쌓아지는 가에 주목합니다. 그 음악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지요. 에레나의 음반이 발매되기 전 제가 만든 메타 태그는 스타일리쉬한 프로듀서(espionne)와 훌륭한 싱어송라이터(elena)가 어떻게 조우하는가였습니다. 하지만 음반을 받아 듣고서야 제가 너무 성급히 태깅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음반은 그렇게 단순하게 들을만한 음반이 아니었어요. 결코 사랑의 기술로는 들을 수 있는, 바로 갈 수 있는 그런 음반이 아니라고요.

에레나가 늦은 여름 발표한 이 음반의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결코 음반이 만든 바운더리 밖으로 밉게 삐져나오지 않습니다. 플룻과 나이론기타 연주까지 선보이는 espionne의 다재다능하고 매끈한 올라운드-프로듀싱에서부터 바비정이 만든 스트레이트한 기타팝, fairbrother(이 얼마나 반가운 이름이란 말입니까)의 과하지 않은 레게튠까지. 이 모든 것들이 에레나의 큐트하면서도 감미롭고 때로는 쓸쓸한 송라이팅을 적당한 선에서 보조해주고 있습니다. 가사는 어떻구요. 에레나, 방영남, 정미환, 바비정이 써내려간 가사는 지나간 여름의 추억과 회한을 나즈막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곱게 포장하고 있는 박의령의 사진과 한선명의 일러스트는 또 어떻습니까.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감성은 결코 사랑의 기술같은 걸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늦여름 발매되는 이 음반은 지나간 여름을 추억하며 보낸 수줍은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 담겨 있는 내용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바닷가에 단 둘이 남아있는 커플의 샌달같은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는 지나간 여름 하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음악을 틀어놓고 아침의 부산스러운 흔적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방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감정이 떠오릅니다. 덤덤하게 세계의 끝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감정 말이예요.

- 에레나 공식홈페이지
- 싸이월드 팬클럽 'say hello to elena'

* 이 글은 2006년 8월 28일, 에레나의 음반이 발매되기 하루 전 '사랑과 웃음의 밤'에 적은 글입니다. 일년이 지난 지금 에레나는 몇차례의 공연과 sbs 인기가요에 출연했으며, 올 가을 일본 유학을 떠날 예정입니다. 글의 내용이 일부 바뀌었는데 어디어디가 바뀌었는지 모두 알아맞추시는 분께는 에레나의 음반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참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 알고 있습니다. 후후.) 제가 예전에 찍은, 한 때 롤리팝 사운드의 에레나 소개 페이지의 공식 프로필 사진이었던, 사진이 있는데 이건 집에 가서 찾아 올리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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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마사히코 - 프로 마조히스트의 재(발)기를 기다리며

근래에 시마다 마사히코의 '나는 모조인간'과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나는 모조인간'은 이전에 악마를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었고 마지막 부분에서 자살한 중년남자 에피소드가 등장하고나서야 제가 그전에 '악마를 위하여'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음을 눈치챘습니다. 그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리만큼 별 존재감이 없었던거지요. 제가 그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아니 전혀 과장되지 않은 말로 제 삶의 태도를 결정지은 그래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천국이 내려오다'에는 작품만큼이나 환타스틱한 작가 후기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는 모조인간'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요. 잠시 옮겨보겠습니다.

- 내가 이 작품에 착수한 것은 1984년 10월이었습니다. 그 전후에 '나는 모조인간'이란 작품을 썼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가장 평가가 높았고, 나도 회심작이라고 공언하기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이 성공에 흥분한 나는 이쯤에서 대 실패작을 남겨두리라 생각했습니다. 비평가나 신처럼 위대한 대작가(신은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죽었다고 하는데)에게 칭찬을 받으며 각각의 진영에 끌려들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또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마조히스트라서, 그들의 비판의 칼날에 난도질 당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악평이 65퍼센트 정도였습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비판의 칼날이 무뎌, 난도질당하는 쾌감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내가 보여준 속임수의 트릭을 간파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저는 그의 성공작보다는 그가 작정하고 만든 실패작을 더 좋아하는 셈입니다. 프로 마조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그에게는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달까요. 솔직히 '나는 모조인간'의 결말 부분에서 아쿠마 카즈히도가 진지하게 클라이밍을 할때는 그 진지함 때문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작가후기에 등장하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발, 여러분, 나의 작품 이외의 별볼일 없는 작품은 읽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의 명작과 나의 작품이 있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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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이 재수 없다면 시마다 마사히코의 권유대로 이 사진을 다트판으로 삼으세요.

예전에 마포도서관에는 책이 없어 성남에 잠시 들렀을때, 대출증이 없어 열람실에서 반쯤 읽었던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을 오늘 다 읽었습니다. 시마다 마사히코의 작품 간행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983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회유곡
1984 망명 여행자는 외치고 중얼거린다
몽유 왕국을 위한 음악
1985 나는 모조인간
1986 돈나 안나
미확인 미행물체
1989 꿈의 사자
1990 피안선생
1995 잊혀진 제국
떠오르는 여자, 가라앉는 남자
1996 피안선생의 침실 철학

'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회유곡'과 '나는 모조인간'은 국내에서 '악마를 위하여'로 출간되었고, 이 중 '나는 모조인간'만 최근에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국내에서 발간된 '몽유 왕국을 위한 음악'에는 '몽유 왕국을 위한 음악'과 '천의 얼굴, 스피카' 와 '스승 팬만'인가 하는 작품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돈나 안나'는 시기로 보았을때 '천국이 내려오다'인것 같고, 국내에서 출시되지 않은 것 같고, 잊혀진 제국은 '로코코 거리'인 듶 싶습니다. '피안선생의 침실 철학'은 '퇴폐예찬'으로 추측되고. 그러니까 오늘로서 저는 국내에서 출간된건 '미확인 미행물체'를 제외하고 다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보았습니다. '악마를 위하여'에 포함된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회유곡'은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듯 싶지만. 그를 통해 얻은 결론은 저는 그의 초기작엔 크게 흥미가 없으며 그의 중기작은 미친듯이 좋아하고, 그의 후기작은 그의 네임밸류에 비해선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이기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의 최고작보다는 더 좋아한다는 얘기입니다. 왜 저는 그의 중기 작품에는 열광하면서 그의 초기작은 크게 흥미가 없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3년전 이맘때 쯤에 다리아 관련 다음카페에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 글은 이 포스트 맨 아래에 옮기겠습니다. 우선 정리하자면 제가 시마다 마사히코의 작품을 좋아하는건 그의 작품에 '제가 매혹될 수 밖에 없는 여인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들은 팜므파탈이기도 하면서 모성애를 요구하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곁에 있으면서도 없는 듯 하며, 제게 삶의 비밀을 알려줄 듯 하다가 스스로 비밀이 되어버리는 그런 여인들입니다. 반면 그의 초기작에 등장하는 여인들 혹은 소녀들은 너무 미숙합니다. 남자를 유혹하기는 커녕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과연 알고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캐릭터들 투성입니다.

잠시 정리를 하자면
'천의 얼굴, 스피카'에 등장하는 스피카 - 어른들을 위한 바비인형 혹은 원조교제를 위한 스쿨걸, 거기에는 매혹도 끌림도 없다. 그저 자기과시를 위한 우스꽝스러운 제스쳐의 소비욕만이 있을 뿐.
'나는 모조인간의' 지즈루 - 인격이 없는 존재,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tv같은 '아, 그래 오늘은 연속극을 하기로 한 날이었지' 중얼거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의 마주루카 - 이름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매혹적이지만 그저 끌려다니고 있을 뿐이다.
'스승 팬만?' - 에는 여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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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멋있어서 더 재수 없지 않습니까?

확실히 시마다 마사히코의 초기작에서 그는 미숙한 마조히스트입니다. 아직 마조히즘의 쾌감을 약간 맛보고 그 쾌감을 자신의 태도로 정했을 뿐이지요. 그런만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녀들 역시 미숙한 새디스트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다 그는 '천국이 내려오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프로 마조히스트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마조히스트는 프로로서의 데뷔를 결심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쾌감의 미학이 절정에 달했을때지요. 그 후 그는 원숙한 마조히스트 - '드림 메신저'와 '피안 선생의 사랑'의 길을 걷다가 '떠오르는 여자, 가라앉는 남자'에서는 결국 노쇠해버립니다. 마조히스트로서의 쾌감의 유효기간은 거기까지였던 거지요. 그리고 지금 시마다 마사히코는 더이상 작품을 집필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그의 모습이 볼 수 있던건 소설이 아닌 2001년도에 공개된 오쿠다 에이지 감독의 영화 '소녀'이고, 지금은 청년때의 곱디고운 외모는 다 사라지고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 오페라 연출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이제 프로 마조히스트에서 은퇴해버린걸까요. 그의 작품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쾌감의 유효기간을 어긴채 이제는 임포텐츠에 걸려버린 마조히스트보다는 그냥 섹스홀릭 혹은 정키에 가까운 무라카미 류의 경우를 볼때 말이예요. 저 역시 더이상 '후생에는 그가 백마흔두번째 여자와의 관계를 가질 때 빠져버릴 음모로 태어나도 좋을것 같은 기분'은 (아래 글 참고) 들지 않습니다. 저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거든요. 시간이란 그런겁니다. 저는 더이상 한때는 삶의 전부인 것 같았던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여전히 이룰 수 없는 꿈에 홀려있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예전처럼 무모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래 글을 썼을때 그곳에서 만나 매일마다 함께 술을 마셨던 사람들은 더이상 그전처럼 매일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며, 이전처럼 한데 모이기 또한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뭐라 얘기하면 좋을까요. 낡을수록 빛을 더하는 앤티크 가구처럼 우리 역시 성장하고 있는거라고 얘기하면 좋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그때와 같은 미숙하지만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린 사회화된 광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게 좋을까요. 여기에 대한 대답은 유보하겠습니다. 대신 년전 썼던 시마다 마사히코에 관한 글을 아래에 옮깁니다.




대문에 걸려있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시마다 마사히코의 '꿈의 메신저'에 등장하는 페넬로피가 떠올랐습니다. 가타기리의 렌틀차일드 사업의 자본으로 쓰이던 무렵 자신의 방에서 매튜에게 유혹과 경계, 두가지 수단을 능숙하게 동시에 쓰던 그녀의 모습 말이예요. 특히 니플의 모습이 그녀를 떠올리게 합니다. 욕망의 경계 사이를 유유히 넘나드는 작고 아담한 사랑스러운 니플.

우물은 시마다 마사히코의 '천국이 내려오다'에 대해 '내 취향이 아닌것 같다'라는 평을 내렸지만, 나는 시마다 마사히코가 너무 좋습니다. 후생에는 그가 백마흔두번째 여자와의 관계를 가질 때 빠져버릴 음모로 태어나도 좋을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좋아하는 것을 즐길때처럼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불행히도 딱지를 떼내듯 언제나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언젠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에 관한 리스트를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의 대부분은 타인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되었고 그래서 나는 그 리스트를 타인을 납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것과 납득시킬 수 없는것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납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 리스트에 분류된 것은 유일했는데 그것은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인이 등장한다'라는 것입니다. 아, 정말 그것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빛이 없는 곳에 사는 외계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그림자와 같은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는 강하게 밀착된 질기고 단단한 무언가를 지니고 살아가는데 나에게는 시마다 마사히코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에 대한 내 감정이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숙명이고 계시이고 덫인 것입니다.

시마다 마사히코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역시 그녀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녀석들입니다. 나는 주인공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들과 그녀들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그녀들과의 관계에서 온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정이라는 것이 순수한 대상에서 자연스레 생기기는 것이라기보다 나와 대상을 이루고 있는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매우 불확실한 것이지만, 그리고 믿음과 불확신이라는 단어는 모순되는 것이지만, 물론 관계라는 것은 분열을 거듭하는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이고 그래서나는 내가 가진 감정들을 사생아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미안합니다. 그래서 나는 작년 가을 내가 구입한 16인치 미니벨로 자전거에 천국이 내려오다에 등장하는 묘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녀 앞에서 마리오가 되었습니다. 소설속에서의 마리오와 묘코와 달리 내가 만들어낸 현실속의 마리오는 묘코 위에 올라 탔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통쾌한 전복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과 한달만에 나는 더이상 묘코위에 올라 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쯤 묘코를 아마 다른 누군가의 엉덩이 아래에 있겠지요. 그리고 마리오를 놀리던 때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겁니다. 마리오, 너의 장난은 실패했어, 좀 더 재밌는 장난을 보여줘봐, 라면서. 그것은 내게 어떠한 계시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지금 나는 '꿈의 메신저'를 읽고 있습니다. 스무 페이지 정도를 넘기면 책은 닫힐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페넬로피를 그리워하며 잠이 들겠지요. 나도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 매튜처럼 그녀의 꿈속에 방문할 것입니다.

그녀의 꿈속에서
나는


'페넬로피, 마지막 이별을 고하러 왔어. 나는 죽을거야.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인간은 죽어야 마땅해.'
라고 말한 뒤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어.




* 이글루스 블로그 "사랑과 웃음의 밤"에서 블로그에서 이사왔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옛말도 있지만 전 술이라면 옛 술이던 쉰 술이던 뭐든 맛있다고 생각하기에 이글루스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조금씩 가져올 계획입니다. 처음으로 가져온 포스트는 '시마다 마사히코 - 은퇴한 프로 마조히스트를 회고하며'입니다. 이 포스트 제목은 여기에서 '시마다 마사히코 - 프로 마조히스트의 재(발)기를 기다리며'로 바뀌었습니다. 이 기다림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우선 시마다 마사히코의 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라는건 일본 기준. 국내에선 올해 초부터 꾸준히 출간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에 대한 소식을 2006년 6월에 쓴 '시마다 마사히코 - 은퇴한 프로마조히스트를 회고하며'에 뒤늦게 달린 댓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하루 방문객 100명도 안 되던 블로그에 댓글을 달 정도로 홍보에 대한 욕구는 넘쳐도 출간을 할만한 지구력은 부족한 출판관계자를 통해 달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5월달에 나온다는 책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으니. 저는 이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며 me2day에 이러한 멘트를 남기기도 했는데 말이에요. 결국 한달전엔 RSS 리더기에 등록한 알라딘의 시마다 마사히코 검색 결과 RSS feed도 지워버렸습니다. 끝까지 발기되어있던 페니스가 아무것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사그라든 기분이랄까요. 하지만 출간 덕분인지 웹에서 고양이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에 대한 기록이 지금은 고양이 코딱지만큼은 늘어났습니다. 아래는 그 고양이 코딱지 덩어리들입니다.

조정린이 만난 사람 - 나는 마조히스트다
한겨레 신문 기사 - “근대문학이 끝난 자리 망상문학을 세웠어요”
우연히 알아낸 시마다 마사히코광팬의 블로그 'Go To The Hell'
- 언젠가 이분의 집을 알아내어 저에게 없는 5권의 책을 훔쳐올 계획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건 시마다 마사히코의 신작 '무한 캐논'의 홍보 컷

* 홍보 컷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다시 아랫도리가 볼록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 어서 빨리 출간되어 사그라든 제 페니스가 다시 발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 출판관계자 분께서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책 출간 후 '시마다 마사히코' 구글 검색어 순위 1위를 자랑하고 있는 제게 보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보내 주시기만 한다면 성심성의껏 홍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이 글을 통해 공짜로 얻은 것에 대해서 얼만큼 입에 발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증명한 바 있습니다. 물론 제 글이 공식적인 홍보가 가능할 글이 될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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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정귀 2007/10/29 15:34 Address Modify/Delete Reply

    흠..제 블로그에 시마다 마사히코 컬렉션에 트랩백이 된링크를 따라와 보게되었네요...ㅎㅎ 시마다 마사히코에 또 열성팬을 만난것 같아 몹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살짝 혼동하시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요.....돈나안나는 '미확인 미행물체' 단편집에 함께 실려있고, '피안선생의 침실철학'은 피안선생의 사랑 으로 , 퇴폐예찬은 마사히코의 수필 모음집입니다. 으으...무한캐논은 대체 언제나오는건지.....ㅜ_ㅜ

    • BlogIcon app_ 2007/11/05 13:10 Address Modify/Delete

      늦은 트랙백 답변에 늦은 댓글입니다. 제가 정리한 것에 의하면 시마다 마사히코의 책 중 피안선생이 등장하는 책은 피안선생과, 피안선생의 침실철학, 이렇게 두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럼 피안선생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요? 퇴폐예찬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그 책의 치질 에피소드는 제 삶의 방식의 지향점이 되기도 했지요. 훔쳐오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네요. 그나저나 집 주소가 어떻게 되시는지..

  2. BlogIcon 정귀 2007/11/06 07:08 Address Modify/Delete Reply

    흠 그렇군요...ㅡ_ㅡ 피안성생의 침실철학은 아직 읽어보질 못해서 정확한 답변은 어렵겠고....
    퇴폐예찬 저도 꽤 어렵게 구했었죠...
    머 마사히코 책구하기가 몇권빼고는 다 어렵겠지만...ㅡ_ㅡ

    집은 경기도 하남입니다....

    이웃을 걸고 싶은데 같은 네이버가 아니면 이웃을 걸수가 없네요..ㅡ_ㅡ;;
    RSS나 등록해야 겠습니다...

  3. BlogIcon 정귀 2007/11/06 07:09 Address Modify/Delete Reply

    ㅡ_ㅡ;;;RSS가 없네요...제가 못찾는건지....

    • BlogIcon app_ 2007/11/19 15:54 Address Modify/Delete

      퇴폐예찬은 이제 마포도서관에도 없더군요. (대체 누가!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버린겁니까!) 그나저나 RSS는 왜 없을까요. 분명 원래 스킨에는 있던걸로 기억하는데. firefox나 ie7을 쓰신다면 주소창 최우측에 있는 버튼을 이용하시라 얘기하겠지만. 조만간 스킨은 교체할 예정입니다. 아무튼 늦은 댓글이로군요. 허헛. 뭐 사는게 다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