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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pyongyang : commie funk and agit pop from the hermit kingdom


radio pyongyang - commie funk

일본에서 간행된 책을 그대로 번역한 '도쿄 음악문화여행 450곳'에는 놀랍게도 북한음악전문점에 대한 소개가 있습니다. 일본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조총련계가 제법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북한 음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레코드점이 있다는건 일본 음반 시장이 얼마나 다양성이 존중되고 있는 곳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부러워하게 해줍니다. 흑. 여기서 잠시 북한음반점문점 소개 페이지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비평이 없는 곳에 문화는 없다고 하지만, 북한 예술은 실체가 어떠하든 다른 사람이 보면 훌륭한 문화이다. 일사불란한 매스게임, 어린 소년 소녀의 훌륭한 합창, 그리고 기쁨조의 특이한 무용. 모두 원래 존재했던 조선의 예술을 정치체제에 맞춰 개량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중략) 지금 일본과 큰 차이가 없는 한국의 가요가 싫증났다면, 이런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the sun city girls의 alan bishop이 설립한 sublime frequencies 레이블은 설립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극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음악들을 컴파일해 발매하고 있습니다. 그 중 'radio pyongyang: commie funk and agit pop from the hermit kingdom'은 sublime frequencies에서 작년에 발매한 radio 시리즈 중 하나로, 홍콩에서 북한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christiaan birant가 직접 컴파일 했습니다. (이 사실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 정정할 내용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그전에 발매된 음반으로는 radio java, radio sumatra, radio palestine, radio morocco 등이 있구요. 당신이 몇번이나 지구본을 돌려도 찾기 힘든 나라에서도 훌륭한 음악은 존재하고 있고, sublime frequencies 레이블의 radio 시리즈는 폐광속에 숨겨진 보물같은 이 음악들을 발굴해내어 그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radio pyongyang'은 그 의미 그대로 정말 잘 만들어진 음반입니다.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을 결사 홍위하리라'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motherland megamix부터 한치의 틈도 찾아볼 수 없는 잘 짜여진 연주와 합창, 온힘을 다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멘트 그리고 이 모든것들을 여백없이 잘 조합해낸 christiaan birant의 컴파일까지. 무엇보다 '도쿄 음악문화여행 450곳'에 실린 글처럼 '지금 일본과 큰 차이가 없는 한국 가요'에 비해 이 음반은 어느 나라의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니크함을 담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음악적인 면으로는 그렇습니다. 저는 음반이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우리에게 말을 건내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 말하려는게 이 음반 좀 많이 팔아줘, 라 할지라도) 그리고 진지한 리스너라면 음반이 건내는 메세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하는게 음악에 대한 예의일 것입니다. 이 음반을 컴파일한 christiaan birant는 이 음반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요. 그 의도가 무엇이었던간에 우리 입장에서 본작 중간중간 삽입된 조금 위험한 (6.25가 남한과 미군의 선제공격으로 벌어진 전쟁이라는) 다이얼로그와 너무 뚜렷해 오히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메세지는 음악적인 면으로는 너무도 훌륭한 본작을 쿨하게 즐기기에는 좀 찜찜하게 하는게 사실입니다. 잠시 다른 얘기 좀 하자면, 오늘은 임시휴일이어서, 매일마다 휴일인 수험생을 가장한 백수 신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휴일기분이어서, 오랜만에 서울시청광장에 소풍을 나갔습니다. 시청광장 한쪽에는 어느 예쁜 여자들과 외국인들이 몰려있어서 잠시 구경했는데 그들은 모두 link라 쓰여져 있는 그들의 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못생긴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몇명은 목에 피켓을 걸고 있었어요. 그 피켓의 내용은 북한내 어린이들의 인권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미주 한인 2세 대학생으로 구성된 북한인권모임 link(liberty in north korea)더군요. 정작 우리가 정치와 이념문제에 휘둘려 간과하고 있던 것들을 재외자인 그들이 알게 해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덕에 가급적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쿨하려는 저이지만 (여기서의 쿨은 핫의 반대되는 의미로의 쿨입니다.) 이 음반에 실린 음악들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음반을 들으면서 같이 생각해 주세요. 그렇게 의미 없는 일만은 아닐겁니다.

괜 히 저답지 않게 진지해졌는데, 사실 짖궂은 유머를 사랑하는 저는 휴가나와 처음 이 음반을 들으면서 이 음반을 가져가 내무실, 아니 이제는 생활관이지, 아무튼 그곳에서 크게 틀어대면 재밌겠다는 생각따위나 했답니다. 존나 개념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을 통하면 어디서라도 구입할 수 있는 음반인데 딱히 안될 것도 없잖아요. 군대는 그 안될 것 없는 것이 안되는 곳이지만. 아무튼- 이 음반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 북한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탈북자동지회가 바로 그곳인데요. 이곳의 자료실에 있는 북한가요를 클릭하면 이 음반에 실린 것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그래도 쉽게 접하기 힘든 북한가요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 전쟁때 이북에서 내려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면 들려드리면 좋아하실 듯 싶네요.

괜 히 골치아픈 문제가 생길까봐 곡을 올리지 말까 고민했는데, 개중 가장 사상적인 면에서 가장 양호한 'commie funk'를 골라 올립니다. 이 음반을 처음 들려준 s군이 일을 하는 p모 레이블에서 본 앨범을 수입할까 3초정도 고민하다 역시 골치아픈 문제가 생길까봐 수입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구해 들어보세요. 어떻게요? 바로 여러분이 알고 계신 그 경로로요! 안녕.


* '사랑과 웃음의 밤'에 2006년 6월 1일에 포스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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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rcy 2007/11/05 22:36 Address Modify/Delete Reply

    맞아요. 트렌드를 쫓다보니 유니크니스를 잃어버렸죠.
    ..라고 해도, 이거 듣자니 참 웃음보가 터져서, 아으.
    귀만은 공평하게 살아가고 싶었는데, 모르는새에 그게 안되게 되어버린건지도.

    • BlogIcon app_ 2007/11/19 15:56 Address Modify/Delete

      저는 정치적 공정성, 이런것보다 편애/편견/선입관 같은 것들을 지지하는 사람이라서. 웃으면서 즐기셔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 아이튠즈와 아이팟 유저라면 당신도 태그의 노예. 노예라 할지라도 연장은 좋아야 하지 않겠소.
- 이번주가 아이팟의 주였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의 손에 몇억 인구가 놀아나고 포스트는 무한증식한다.
- '아이팟에서는 컴퓨터로 음악을 옮길 수가 없어요.'라며 곡 자랑하고 mp3는 주지 않던 못된짓을 할 수 없게 되었다!
- mbc 스페셜에서 made in china 없이 살아가기 프로젝트 이런거 하던데, 블로고스피어에서 구글 얘기 안하고 살아가기 프로젝트 해도 재밌을 것 같다.
- 블로그에 좋은 포스트를 올리는 것보다 블로그를 예쁘게 꾸미는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블로그 만든지 일주일만에 last.fm 앨범 퀼트 달아놓고 예쁘다 좋아하는 사람)
- 블로그에 좋은 포스트를 올리는 것보다 블로그를 예쁘게 꾸미는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2) (블로그 만들고 일주일만에 파비콘만 두번 변경한 사람)
- 기획의 80%가 정치라면, 나는 20%도 못하고 있구나.
- 레고도 좋고 플레이모빌도 좋지만 내가 갖고 놀 수 있는건 중국산 레고 brick.
- 자마이카에서 쓰는 파투아어 사전. 중,고등학교때 싫어하는 애가 있으면 못 알아듣게 영어로 욕을 했는데, 요새는 다들 영어를 잘하니 파투아어 욕을 배워야겠다. bubu.
- 너흰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란다. 단지 이 나라가 곱게 포장한 쓰레기통일 뿐이지.
-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웹 2.0 서비스 덕분에 여자를 꼬시기가 더욱 쉬워졌다. 고로 웹 2.0 서비스는 좋은 서비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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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SHADOW - startroducing private press

"잠깐 말장난 좀 치자면 dj shadow의 등장은 음악의 revolution이었으며 그의 행보는 음악의 evolution이었다. 하지만 그가 한 것은 단지 음악의 recycle이었을 뿐이다"


cut & paste. 필자의 이름 우에에에의 첫번째 '에'를 걸고 장담하건데, 이 용어는 90년대 중반 이후 부작용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남용되었다. 처음엔 팝칼럼니스트들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칸을 채우는 용도로 쓰기 시작했고, 그리고 새로운 조류에 기대어 음반을 팔아치워야하는 업자들에 의해, 그후엔 음악에 대해서 논하기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이제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실릴정도로 대중들에게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 용어가 그만큼 널리 쓰이게 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용어가 음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기 때문일텐데, 기존 음악의 패러다임은 아무도 음악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음악은 우뇌에서, 심장에서, 발뒤꿈치에서, 남자의 경우는 고환에서, 여자의 경우는 자궁에서, 혹은 외계에서 올 수도 있었다. 즉 그것은 일종의 무기질과 같은 형태로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뮤지션들은 술을 마시고 약을 하고 혹은 섹스를 하며 음악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cut & paste라는 패러다임은 무기질이었던 그것을 유기질로 바꾸었다. LP, tape, radio, TV 등 우리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에서 음악이 탄생하기 시작한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근간이 된것은 favorite의 의미로, respect의 목적으로, 혹은 그것이 MDM만큼이나 최고이기 때문에 5,6,70년대의 funk/soul/jazz/psychedelic rock 과 같은 장르의 45회전 7인치 LP single이었다. 이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그전의 패러다임에 있던 음악들이 분명 과거와 연결되어있기는 하나 그 고리가 명확하지 않았던것에 비해, 인터넷이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한국에 있는 우리들도 우르과이에 사는 여자의 음모의 색깔이 무엇인지조차 확인할 수 있게 된것처럼, cut & paste는 과거의 음악과 현재의 음악사이에 건실한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뭐가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마구잡이로 잘라지고 변형되어 붙여졌기에 건실한 연결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결고리의 맞은편에 있는것과는 매우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아울러 그것은 유기질이기 때문에 한정되어있고, 남이 먼저 써버린 후 자신도 그것을 쓰면 조금 쪽팔리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한 뮤지션들은 더이상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고, 남들이 찾지 못한 새롭고 희귀한 LP를 찾기 위해 근면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을 창작하는데 있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음악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사실 위의 내용은 결코 사설이 아니다. 이 모든것을 에반게리온의 비밀조직 nerv처럼 dj shadow 홀로 조작했다고 친구에게 들려주어도 욕먹을 정도의 큰 과장은 아닐것이다. dj shadow는 한명의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하나의 커다란 현상이다. 그의 등장은 많은 뮤지션들이 DJ 뒤에 붙일 멋진 이름을 고심하게 만들었고, Technics사와 Akai사의 직원증원과 Gibson과 Fender사의 정리해고를 조장했으며, 회현상가의 악덕 엘피가게 주인 아저씨의 얼굴에 탐욕스러운 웃음을 짓게 했으며, '개나 소나 MPC, 돼지나 말이나 DJ'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심지어는 beastie boys 팬클럽조차 생기지 못한 열악한 환경의 나우누리에 국내 최초의 dj shadow의 팬클럽 'vinyl junkies(go fndjsd)'가 생기게까지 했다. 이 모든 현상들은 dj shadow effect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 당신이 사회학과나 경제학과 학생이라면 이 제목으로 레포트를 쓴다면 분명 A+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담당교수가 올드락 열혈팬만 아니라면 말이다. 여기서 피쳐글의 수순에 따라 그의 발자취를 뒤따라가 보기로 하자.
dj shadow의 본명은 josh davis. 재미없게도 1973년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hayward라는 곳의 평범한 중산층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풋볼을 즐기고 치어리더소녀와 사귀는 중산층 백인의 삶과는 분명 다른 익사이팅한것이었다. 주위의 아해들이 다 기타, 베이스 하나씩 집고 동네 차고에서 kiss를 커버하고 있을 시절에, 그는 grandmaster flash의 'message'를 듣고 당시 할렘의 껄렁뱅이 흑인들이나 듣던 힙합에 경도되었다. 그리고 84년, 턴테이블을 구입하고 샘 레이미가 그러했던것처럼 소장하고있던 마블코믹스를 팔아 LP를 구입하면서 방안에 틀어박혀 집에 있던 라디오와 더블 카세트 데크를 이용, 창조적인 실험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한 문헌에 따르면 dj shadow는 잡지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들을 잘라 붙이는 일명 꼴라주를 즐겨했다고 하는데, 아마 이런 성향은 그의 실험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거라 짐작된다. dj shadow의 그 시절을 회상하는 멘트를 들어보도자. "기계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레코드와 테입에서 나오는 음을 동시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테이프를 다른 테입에 녹음할 수 있었는데, 한 테이프에 비트를 깔고, 그 비트를 다른 테이프에 덮어씌우면서, 내 턴테이블로 스크래치를 했어요. 그리고 매주 용돈을 받으면 레코드가게로 달려가 4개의 싱글LP를 샀는데, 그것은 최고의 추억입니다!" 87년부터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며 내공을 쌓던 그는 대학에 진학한 뒤 대학라디오프로그램을 통해 몇몇 B-Boy를 만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지금의 quannum 크루 - latyrx와 blackalicious다. 그 후 그는 4트랙 레코더를 이용 'hip-hop reconstruction from the ground up'을 발표하는데 이 곡은 1991년 6월 source사에서 주관하는 'unsigned hype' 컨테스트에서 우승을 하고 그 작업은 hollywood의 힙합레이블 hollywood basic의 dave 'funken' klein의 귀에까지 들어가 곧 hollywood basic과 계약을 하기에 이른다. 그 후 dj shadow는 91-92년동안 적은 양의 작업물을 발표하는데 이 작업물중 'the legitimate mix'이 영국에 살던 당시엔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mo'wax 레이블의 오너 james lavelle에게 큰 인상을 남긴다. 그는 곧 dj shadow와의 만남을 추진했는데 그 의지는 (만약 그런게 존재한다면) 신의 축복속에 관철되고 말았다. 당시 dj shadow는 big beat, profile, tommy boy, wild pitch와 같은 미국의 전형적인 '랩'레이블에서 데모테입을 제작했는데, 당시 레이블 매니저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비트란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일종의 언어다, 하지만 니는 그저 사람들이 듣기 편하게 노래를 살릴 수 있게만 하면 되는기다" 기존의 음악계에 염증을 느끼던 그들은 아마도 만나는 순간 도원결의하던 시절의 유비, 관우, 장비가 그랬던것처럼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이 될거라는 깊은 예감을 하고, 기존의 음악씬을 재편해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서수남 & 하청일 이후 최고의 콤비가 되었고 그후의 전개는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과 같다. 'in/flux','what does your soul look like'(이곡은 브리티쉬 인디차트의 정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외 몇장의 싱글과 EP를 발표, 96년 정규앨범 'endtroducing' 발표. 그리고...

'endtroducing' 은 기존의 모든 룰을 바꾸어놓았다. 필자는 이 사실을 우에에에의 두번째 '에'를 걸고 장담하는 바이다. 여기서 MDM 2월호 reader's page에 실린 나우누리 디제이쉐도우 팬클럽 운영진 김민씨의 고백을 들어보자. "난 endtorudcing을 듣고 쉐도우가 미친놈이라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걸 음반으로 낼 생각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100% 샘플링. jazz, funk, soul, psychedelic rock, ambient, techno 를 넘나드는 신디크로프드의 넓적다리만한 스케입의 사운드. 그건 일종의 전복, 쿠데타, 아니 혁명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음반은 그가 afrika bambaataa, marley marl, grandmaster flash 등 올드스쿨힙합 - 디제잉이 중심이되었던 순수한 힙합 시대의 선지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과 함께 "내가 하고 있는것은 단지 힙합일 뿐이다'라고 증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씬의 무지한 권력계층인 평론가들에 의해 당시 페스트균처럼 창궐하던 trip-hop이라는 카테고리의 첨병처럼 인식되어지곤 했다. 하지만 trip-hop이라는 단어가 백신의 발명으로 멸종해버린 페스트균처럼 사어가 되어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이 음반은 당시 베이에리어를 근거지로 조금씩 싹트고 있던 turntablism 더 나아가서는 underground hiphop씬을 수면위로 부상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보는게 옳다. 물론 underground hiphop도역시 AIDS처럼 근래들어 유행하고있는 트렌디워드이기는 하지만, 당신이 역동의 세월을 지나온 흑인음악과, 그것의 위대함에 무릎꿇고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며 온건한 모습으로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의 깊은 애정을 이해한다면 단지 위 단어가 급조된 유행어만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작의 'why hiphop sucks in '96'에서의 답변은 시사하는 바가 큰데, 그의 pure hiphop에 대한 애정은 그가 조직한 solsides, 현재는 quannum 크루의 작업물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는 페이지를 넘겨 그것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세요. 그 후 악덕기업 ebay에 수수료까지 지불해가며 비싼값으로 그의 거의 한정반으로 발매된 초기 레어작들을 구입했을 이들에게는 큰 허탈함을, 그러지 못한 대부분의 팬들에게는 큰 기쁨을, dj shadow라는 네임밸류에 크게 힘입고 있던 mo'wax 레이블에게는 큰 돈을 쥐어주었을 그의 초기작품집 'preemptive strike'와 afrika bambaataa의 'death mix'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태도 혹은 취향을 다시 한번 선언함과 동시에 언제나 2% 부족한 목마른 팬들에게 선사하는 귀여운 서비스 'camel bobsled race (q-bert mix)'를 이후로 온전히 그의 이름만 박힌 앨범은 한동안 발매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파트너쉽을 다지는데 주력한다. 그 중 첫번째는 James lavelle의 프로젝트 UNKLE. 아마 많은 분들이 channel V와 같은 음악채널에서 싱글커트되었던 'rabbit in your headlights'의 MV에서 앙상한 몰골의 주인공이 차에 치이는 장면을 한국 여고생이 아담을 보는 횟수만큼이나 많이 보았을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이 앨범이 그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걸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UNKLE은 시작부터 큰 기대를 불러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dj shadow와 james lavelle의 프로젝트라는 점도 있지만, 떡보다 남자라는 일본 속담처럼 게스트 진용이 화려했기 때문이다. UNKLE에 참여한 게스트는 여러각도에서 분류가 가능하다, 과거의 스타 - kool g. rap, 현재의 스타- thom yorke, richard ashcroft, 미래의 스타 - badly drown boy. 혹은 영국의 주류음악 - british rock, 미국의 주류음악 - hiphop. 이렇듯 당시의 대중 음악계를 게걸스럽게도 통째로 집어삼키려했던 프로젝트 UNKlE.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의 미덕은 단지 그것에 막연히 기대지 않은 채 자신들의 스타일을 지키며 적절한 컨트를를 이룬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높은 기대치에 충분히 만족할만한 음악으로 보답했다. (수퍼프로젝트에 있어서 사람들의 기대치를 배신하기가 얼마나 쉬운가에 대한 적절한 예로는 Gorillaz가 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UNKLE 이후 그는 그 성공을 지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꾸준히 새로운 실험을 하는데 몰두하는데, 그 결실이 이제는 전설이 되버린 cut chemist와의 함께 작업한 'brainfreeze'와 'product placement'다. cut chemist와 dj shadow는 유사한 점이 많은데, 둘 다 45회전 rare funk/soul single의 광적인 컬렉터라는 점. 베이에리어를 주축으로 한 underground hiphop 씬의 중심이 되는 백인 DJ라는 점. 그리고 서로 모르게 Double Dee & Steinski의 'lession 1,2,3'를 바탕으로 'lession 4'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후 그들은 각자 'lession 4'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함께 'lession 5'를 만들기로 약속했다고 하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위 두 음반을 통해 함께 작업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brainfreeze'와 'product placement'는 라이브를 바탕으로 한 dj mix 음반이다.
이 음반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dj shdow가 'endtroducing'을 발매한 직후, 그것이 시퀀싱 위주로 이루어진 음반이기 때문에 그의 turntablist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dj shadow는 그런 의심에 대해 이 두장의 음반으로 명쾌하게 대답한다. 'brainfreeze'는 그 이름도 저명한 futureprimitive soundsession의 리허설에서 녹음된것이다. 본래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건지, 아니면 정식 음반 판매를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다소 급조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인지, 현재 turntablism 씬에서 엿 볼 수 있는 화려한 스킬이나 긴밀한 구조적 미학은 엿보기 힘들다. 하지만 6,70년대 45회전 soul/funk single에 대한 두사람의 깊은 애정과 컬렉터로서의 진득한 면모를 맛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brainfreeze'가 발매된지 2년 후 그들은 'product placement'로 다시 뭉친다. 그 음반은 모든면에서 'brainfreeze'때보다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음반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현재진행형 DJ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단서가 될 것이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30여분정도 되는 두개의 믹스트랙에 총 129개의 funk, soul, krautrock, movie dialogue 45회전 싱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단 두사람이 60분동안 1분에 2개 정도의 각기 다른 음원들을 실시간으로 믹스하는 광경을. 많은이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 광경을 그들은 음반을 통해 그리고 총 7회로 진행된 product placement tour를 통해 완벽히 재현해낸 것이다. 'brainfreeze'와 'product placement'는 거장 turntablist 두명이 뭉쳤다는 사실과 음악 내적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음악 외적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는데, 이 음반들이 지극히 인디적인 방법으로 소량 제작되었고, 그것들은 투어를 통해서만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뮤직 비지니스와 프레스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한걸음 물러서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으로 보인다. 실제로 dj shadow는 최근 인터뷰에서 프레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와 음반의 프로모션을 위해 거대한 관중이 응집한 페스티발에서 디제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이들의 작업은 분명 의미있는 것이기는 하나, 전세계에 널리 분포되어있는 그들의 팬 혹은 wannabe DJ들에겐, 특히 그 모든 혜택에서 항상 변방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한국의 팬 입장에서는 조금 불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불만을 품고 고의로 '이 모든것은 ebay가 마이크로칩으로 그들을 조종한 결과다' 라는 음모론을 펼쳐도 납득할 수 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외에도 quannum 패거리를 이끌고, handsomeboy modelng school과 'dark days ost'에 참여하면서 항상 뮤직씬의 안과 밖을 드나들며 바쁘게 지내온 그이지만, 항상 그의 팬들은 그의 솔로 음반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의 운명을 바꾼 'endtroudcing'가 발매된지 6년만에, 말장난 좀 치자면 1세기가 지난후, 마감기간을 한참 넘긴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선 내일 드디어 'private press'라 명명된 그의 두번째 정규앨범이 발매된다.

현 시점에서 'private'라는 단어는 어딘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발매되었던 곤충소년윤키의 'mexican vacation'의 첫번째곡과 마지막 곡에서도 'private'이라는 단어가 쓰였고 그 단어는 그 음반의 성격에 비추어 그 음반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e모씨의 표현을 빌어 '모던락을 대학원 박사과정화 시키려는 국적없는평론회'라면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급속히 진행된 탈-집단주의와 개인적 이념과 사상을 존중하는 사조의 발달이 어쩌구절씨구하겠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다만 분명한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음악이라는건 대단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anthem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kill rock star라는 말조차 무색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cut & paste라는 방법론은 얼마나 개인적인 작업인가. 그것은 기존에 존재하던 음악을 개인적인 취향과 우연적, 개인적 경험을 통해 수집하고, 그것을 침실이라는 개인적 공간에서, 개인적인 감정과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아닌가. 아울러 본 타이틀은 분명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수식을 덧붙이며 그의 작업을 평가하려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 대한 항변이자, 그가 뮤직비지니스의 중심에서, 그리고 투어에서 느낀 불편함과 공포를 드러낸게 아닌가 싶은데, 실제로 dj shadow는 본 작업에 대한 영감의 대부분을 99년에 행했던 투어에서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본작은 intro는 '451 commercial avenue, apartment k, richmond, california, september 9..'를 읊는 여성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최후의 private press인데, 실제로 30-50년대 사이 미국에선 다른이에게 보낼 편지를 컷팅해주는 샵이 존재했다고 한고 이것은 그곳에서 컷팅된 엘피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우에에에의 세번째 '에'를 걸어야 할때가 왔다. 이 음반을 듣는 최고의 방법은 단지 이 음반을 최대한 개인적으로 듣는 것이다. 당신이 프로듀서 지망생이라면 'monosylabik', ''와 같은 곡에서의 비트메이킹과 'blood on the motoway'와 같은 곡에서의 샘플 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고, (실제로 국내의 한 프로듀서의 고백에 의하면 이 음반은 테크닉적 측면에서 여태껏 나온 것중 최고라고 한다) 당신이 디제이 지망생이라면 ' (Shadow, Cutchemist, Numark playing live'를 들으며 스킬을 연구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혹은 당신이 단지 그냥 평범한 음악팬이라면 애인에게 버림받은 날 'the 6 day war'를 들으면 절망적인 무드를 즐기는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냥 이게 dj shadow의 음악이구나 하면서 그날 술자리에서의 화제로 삼아도 좋다. 그가 'you can't go home again'에서 가을저녁노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의 simon & garfunkel의 'el condo pasa'의 기타인트로를 댄스플로어를 위한 기묘한 분위기의 주변음으로 인용한것처럼, 당신도 최대한 개인적인 마인드로 이 음반을 받아들이고 재해석하고 즐겨라. 어쩌면 dj shadow는 'endtroducing'의 음악 만들기의 혁명 이후, 'private press'에서 음악 듣기의 혁명을 꾀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날로 먹는 페이지 - dj shadow에 대한 사소한 궁금중들.
Q:j.davis가 찍힌 앨범을 가지고 있는데 dj shadow의 음반인가?
A:그 음반의 j.davis는 jonathan davis이다.
Q:'endtroducing'의 커버에 나온 사람은 누구인가.
A:뒷면은 ABB 레코드의 설립자 Beni B이고 앞면 왼쪽은 chief xcel, 오른쪽은 lyrics born이다.
Q:BSWAGOS와 WDYSLL은 무엇인가.
A:길게 타이핑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줄임말이다.
BSWAGOS - building steam with a grain of salt
WDYSLL - what does your soul look like?
Q:dj shadow가 nirvana의 곡을 샘플링했다고 들었는데.
A:맞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그런지 밴드 nirvana가 아니라 70년대 영국의 nirvana다.


* 2004년도 1월 23일에 '사랑과 웃음의 밤'에 적은 글입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2002년도 MDM 7월호에 개제되었습니다. 벌써 5년전의 글이군요. 예전에 썼던 글을 이곳에 다시 옮기는 이유는 당연히 그 이후로 새로운 글을 별로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블로그를 이사하며 적어도 1일1포스트의 원칙을 세웠는데 그간 갖고 있던 컨텐츠가 다 떨어지면 새로운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시한이 이제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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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 mdm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래 잡지에는 플리퍼스 기타 해체 이유와 관련된 치정사건설에 대한 별첨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뺐습니다. 혹시 이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개인적으로 컨택하시거나 수천권의 mdm이 잠자고 있는 홍대 부근의 건물을 찾아보세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닭살스러운 표현들로 가득하군요. 뭐,누구에게라도 스윗한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있는 법이니까요. 플리퍼스 기타의 멤버 탈퇴 사유 중 다꼬야끼가업전수설은 당연히 농담입니다. 예전에 딴지 일보에서 놀랍게도 콩가루집안인 시부야케이의 족보구축을 꿈꾸었(다 실패했)던 카오루씨가 이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여서인지 진담으로 받아들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넬리우스 기사를 쓰면서 저 얼토당토않은 음모(외 확인할 수 없는 여러가지)를 그대로 배낀 적이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나쁜놈일테고 후자의 경우라면 단지 멍청한거겠죠? 그리고 두 경우 중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유머감각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테구요. 제가 너무 가혹하게 얘기했나요. 뭐, 누구에게라도 씨니컬한 글을 쓰고 싶을 때는 있는 법이잖아요? :-P


cornelius

cornelius


코넬리우스(cornelius), 본명은 케이고 오야마다. 그의 이름을 입을 모아 발음하는것만으로도 대뇌피질에서 땀이 한방울 뚝 떨어지는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환타스틱플라스틱 머쉰(fantastic plastic machine)이라면 말리브 해변가에서 야자수를 따먹는 기분으로 나긋하게 폴짝폴짝 뛰어주면 되고 스나가 티 익스피리언스(sunaga t' experience)라면 라틴 리듬에 몸을 맡기고 적당히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만 코넬리우스는 대체 어떤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옳은지 전혀 알 수 없거든요. 그런 아티스트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설명해야한다니 이것참,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코넬리우스를 설명하려는 행위는 음, 적절한 비유를 찾아보자면 아이덴티티라는 이름의 홀로그램 지형을 걷는것 같달까요. 이 비유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잠시 코넬리우스 음악의 화학적 분석이라는걸 시도해보자면. 시부야-케이(shibuya-kei)의 중요한 자양분이 된 60년대의 황금 라운지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가 싶으면 별안간 헤비한 기타 사운드가 우퍼 스피커를 잡아먹을듯이 두들겨주고 때론 노골적일 정도로 따사로운 비치 보이스(beach boys)풍의 샤랄라 멜로디로 심장을 녹이더니 갑자기 드럼엔베이스(drum n' bass)를 뛰어넘어 드릴엔베이스(drill n' bass)에 가까운 쪼갬비트가 등장하고. 어휴, 화학적 분석이라는게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한 꼴라쥬입니다. 뭐, [69/96]에선 비발디의사계와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iron man'을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섞어버리는 형이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만은.

케이고 오야마다의 아이덴티티부재 혹은 아이덴티티과잉은 학창시절부터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크램프스(the cramps),스미스(the smith),지저스엔 메리체인(the jesus and mary chain),스페셜즈(the specials),미스피츠(misfits) 심지어는 자국의 아이돌팀인 매치(match)나 체커스(checkers)까지. 같은 시기에 무려 10개 정도의 전혀 다른 장르의 카피 밴드에서 활약을 했다는군요. 그래서 축제시즌때면 고딕풍의 의상을 입고 크램프스 카피밴드에서 기타를 치다가 바로 땡땡이무늬 모자를 쓰고 스페셜즈의 카피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나요. 그러다 1987년 유키코 이노우에라는 친구와 피위 식스티스(pee wee 60's')라는 팀을 만들면서 그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1988년 중학교 테니스부에서 같이 테니스를 치다가 '난 비치 보이스를 좋아해' '아니 너도 비치 보이스를 좋아한단 말이야?' 류의 대화를 나누다 친구가 되었던 오자와 겐지가 동경대 문학부에 입학하고 다른 두명의 덩달이 멤버들과 합류를 하면서 공식적으로 케이고 오야마다 최초의 팀으로 알려져 있는 롤리팝 소닉(lollipop sonic)이 결성됩니다. 참고로 롤리팝 소닉이라는 팀명은 lollipop shop과 sonic youth의 합성어라고 하는군요. 웁스. 이런 기괴한 조합이라니. 그 후 오리지날러브(original love)와의 조인트 공연을 시작으로 라이브클럽을 전전하며 활동하던 롤리팝 소닉은 프로뮤지션으로 거듭나기로 결정하고 폴리스타(polystar)와 계약을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가업인 다고야끼집을 잇기 위해서, 잘생긴 다른 멤버들보다 인기를 못 얻을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세명의 멤버가 빠지고 롤리팝 소닉은 케이고 오야마다와 오자와 겐지 둘만 남습니다. 이 둘은 레코드사의 요청으로 플리퍼스 기타(flipper's guitar)로 개명하고 1989년 데뷔 앨범 [海に 行くつもりじゃなかった(three cheer's for our side)]를 발표합니다.
플리퍼스 기타의 데뷔음반은 진부하지만 합당한 표현을 빌리자면 일본 대중음악사에 한획을 그을만한 것이었는데요. 일방적으로 영미음악만을 추종하던 무리들에게 '니뽄에서도 이런 음악이 가능하다니!'라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것이지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얼터너티브를 촉진시켰던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나 한국에서도 헤비메탈을 할수 있다는걸 보여준 시나위의 데뷔음반만큼의 위력을 지닌 음반이었달까요. 뒤의 비유는 좀 띠껍낀 하지만 아무튼 덕분에 일본에선 때아닌 밴드 붐이 일기도 했다는군요. 그 후 역시나 완성도 높은 두 앨범 [camera talk](이 앨범으로 플리퍼스 기타는 레코드 대상에서 뉴아티스트 부분을 수상합니다. 와우!), [doctor head's world tower] 발매하며 승승장구하던 두 팀은 91년 투어를 취소하고 돌연 해체합니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플리퍼스 기타가 일본 대중음악사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어마한것이었는데요. 60년대 라운지뮤직, 스웨디쉬팝, 남미팝 등 이빨이 썩을것 같은 달디 단 음악스타일을 적당히 얼버무린, 꿀을 찾은 꿀벌처럼 마냥 행복한(happy like honey bee!) 사운드는 속칭 네오 시부야-케이(neo shibuya-kei)로 일컬어지는 90년대 중반 이후의 일본 밴드들이 아직도 참고하고 있을 정도니깐요.

flipper's guitar

flipper's guitar



플리퍼스 기타를 해체 후 케이고 오야마다는 영민하게 자신을 일본 음악씬의 거대 괴수로 키워나갑니다. 92년 네오 시부야-케이 뮤지션들의 보금자리가 될 트라토리아 레코드(trattoria records)라는 유쾌하게 혀를 튕겨야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의 레이블을 설립하구요. 카히미 카리에,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 브릿지(bridge) 등 여러 팀들의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날리고 심지어는 여장을 하고서 CF에도 출연을 합니다. 그리고 93년 9월 코넬리우스라는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 케이고 오야마다의 첫 싱글 'sun is my enemy'가 발표되고 쉬이 예측 가능한 수순대로 큰 화제를 모읍니다. 게다가 불과 2개월전에 오자와 겐지의 첫 싱글이 발매되었으니 일본 프레스 편집부에선 적당한 화제거리를 찾았다며 잔치라도 벌였겠지요. 참고로 코넬리우스라는 이름은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의 주인공 원숭이 이름에서 따왔다고하며 굳이 솔로인데도 밴드명을 붙인 이름은 T셔츠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그의 바램대로 94년 이나중 탁구부의 마에노도 입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입고 있는 코넬리우스 티셔츠가 빼곡히 박힌 첫 앨범 [first questien award]가 발매됩니다. 본작은 플리퍼스 기타시절의 extended version이라 할만한 음반이었는데요. 오자와 겐지가 서정적인 포크 음악으로 플리퍼스 기타 팬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면 코넬리우스는 아예 작정하고 기존의 팬들을 흡수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겼던걸로 기억합니다. 코넬리우스의 야심찬 거대괴수 음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난건 95년 발매된 [69/96]에서부터였습니다. 본작을 통해 코넬리우스는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층 넓히고 꿀벌처럼 가벼웠던 자신의 음악에 스피디함과 중량감을 부여합니다. 코넬리우스가 라이브시 애용하는 플라잉 브이 기타가 활약할때가 온거지요. 그리고 96년 6월 9일에는 전작의 이름을 뒤집은 리믹스 음반 [96/69]를 발표합니다. 본작에는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과시라도 하듯이 피치카토 파이브, 히데, 스차 다라 파(scha dara parr), 타큐 이시노 등 그바닥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를 하는데요. 사실 본작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에 대한 단서는 [69/96]의 96번째 히든트랙에 살포시 드러나있기도 하지요. 그리고 97년 옆집에 사는 모던소녀 순이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그의 최고(괴)작 [fantasma]가 발매됩니다.

fantasma

fantasma

 상당량의 샘플과 기타 노이즈 그리고 비치보이스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멜로디 (심지어 역시 비치보이스를 답습하는 애플스인스테레오(apples in stereo)의 로버트 슈나이더(robert schneider)와 누가누가 더 비치보이스 같나 경쟁하기도 하지요) 등 경계라는게 무색할만큼 폭 넓은 스펙트럼과 컨엔페이스트, 믹스엔매치가 난무하는 본작은 98년 마타도어(matador) 레이블을 통해 전세계에 발매되는데요. 아마 서양인들에게도 적잖이 충격적인 앨범이었을겁니다. CMJ가 선정한 그해의 앨범에서 당당히 10위안에 들고 레이건 매거진에서 코넬리우스를 팝컬쳐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50인 중 한명으로 선정하는 사건이 벌어질 정도였으니깐요. 이바닥말로 일본 뮤지션들의 '형'에서 인터네쇼날 '형'으로 거듭난거지요. 그리고 인터네쇼날 형답게 영미프레스에서 자신과 종종 비교되었던 벡(beck),콜드컷(coldcut),블러(blur) 등 영미권의 명망높은 뮤지션들의 곡을 리믹스 하고 그 뮤지션들에게 자신의 곡을 리믹스시키기도 하고 그걸 앨범으로 발매하기도 하고 타카코 미네카와 결혼도 하고 음반 프로듀스도 해주고 임신도 시키며 살랑살랑 여유롭게 밀레니엄 텐션을 넘깁니다. 그리고 2001년 10월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문제작 [point]를 발매합니다.

point

point

새 앨범이 나올때마다 항상 전작 혹은 직계선배 밴드를 들먹거리는 평론가들의 관행을 따라 본작도 전작과 비교해서 얘기해봅시다. [fantasma]는 서프라이징 파티의 감격을 고스란히 간직한 음반이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열면 폭죽과 사람들의 환호가 머리위로 쏟아지고 방 한군데에는 달콤한 크림케익이 놓여있을 때의 감격 말이에요. 허나 충격요법이라는건 여러차례 위력을 발휘하기 힘든 법. 이전보단 덜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방문을 열어 봅시다. 와우! 이건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더욱 서프라이즈해요. 폭죽도 사람들의 환호도 없지만 대신 커다란 숲이 방안에 가득 들어차있거든요. 계곡에선 조르르 물이 흐르고 풀밭에선 귀뚜라미가 찌르르 울고 나무에선 새가 꺄르르 우짖고. 차라리 시끌벅적한 파티보단 이쪽이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문득 달콤한 크림케익이 없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바로 플리퍼스 기타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의 음악을 관통해온 아름다운 멜로디 말이에요. 게다가 그는 지금껏 수많은 평론가들의 불필요한 분석을 '단지 난 팝을 하고 싶을 뿐이다'라는 말로 일축시켜오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point]에서 들을 수 있는건 샘플링된 그의 보이스와 자연의 소리 그리고 실제 악기 소리가 팝적 문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며 재배치된 사운드의 구조물 뿐입니다. 게다가 유일하게 멜로디의 자욱이 분명한 곡인 'brazil'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 carlos jobim)의 커버곡인데다가 보이스도 오토튠으로 적당히 찌그러뜨려놨구요. 대체 무엇이 코넬리우스의 음악을 뒤바꿔 놓은 것일까요.


fun 9

fun 9

여기엔 두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첫번째 단서는 99년도에 코넬리우스가 프로듀스한 타카코 미네카와의 [fun 9]인데요. 본작은 아방가르드 라운지팝을 구사하는 수끼아(sukia)의 사이드 프로젝트 디제이 미 디제이 유 (dj me dj you)와 같이 작업을 했습니다. 본작에서 코넬리우스는 다소 의식적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디제이 미 디제이 유의 실험적인 사운드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좋게좋게 얘기해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겠지요. 두번째 단서는 이전과 다른 그의 작업 방식인데요. 인터뷰에 따르면 1년정도의 기간을 두고 여유롭게 주위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스튜디오 사용시간에 신경쓰지않고 큰 강박없이 작업을 했다고 하는군요. 즉 1년의 기간동안 코넬리우스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어린아이가 레고 블럭을 쌓듯이 차근차근 사운드의 파편을 쌓아나간거지요. 어찌되었건 결과물에 대한 평을 내리자면 나름대로 좋습니다. 구조도 [fun9]에서의 강박어린 디제이미디제이유 답습에 비해 훨씬 탄탄해졌고 매 음반마다 지향해왔던 앨범 전체의 유기적인 결합도 그 어느 음반보다 잘 짜여져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달아 금새 질렸던 전작들에 비해 오래 곰씹으면서 들을 수도 있을 듯 싶구요. 그래도 크림케익은 아니더라도 카스테라정도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글쎄요, 이는 단지 저의 과한 욕심일 뿐일까요?

- cornelius 내한공연 싸이월드 타운
- 2002년 fujirock festival cornelius 공연 장면 (in app's flickr)


* 2004년 1월 24일 '사랑과 웃음의 밤'에 쓴 글입니다. 내한 공연을 앞 둔 낚시성 포스트입니다. 후후. 이 포스트 보는 분 중 내한공연 가는 분 계시나요? 저는 예매 시작일 두번째로 예매에 성공했습니다,만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예매율이 별로 높지는 않다더군요. 사실 신보 'sensous'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후지락페스티발 때 본 그의 공연이 너무 좋았거든요. 사진은 위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치정사건은 조만간 치정사건의 주인공이 참여한 'bossa nova 1991 shibuya scene retrospective'<